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천 상륙작전 (문단 편집) == 기타 == || [[파일:1280px-USS_Inchon_(MCS-12)_underway_in_the_Gulf_of_Mexico_2001.jpg|width=100%]] || * 미 해군의 [[이오지마급 강습상륙함]]의 마지막 함정인 LPH-12는 인천 상륙작전에서 이름을 따와서 USS Inchon으로 이름지어졌다. USS 인천은 1995년 3월에 기뢰전 지휘함으로 개수되었으며, 이후 2002년 6월 21일 퇴역하였다. * 작전을 참관하던 당시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이 작전 도중에 실종된 사건이 있었는데 한국 해병대원들과 함께 상륙해 서울 해방까지 함께했으며 덕분에 손원일 제독은 서울 탈환 직후 자신의 이름으로 포고령을 발표하는 영광을 누렸다. * 2015년 9월 인천 월미도 일대에서 65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행사가 거행되었다. || [youtube(tl6WxYb1KZY)] || * 위에서 볼 수 있듯, 인천상륙작전은 해병대는 물론 전군이 뭉쳐 수행한 합동작전이지만, 모 예비역 단체에서 해군은 한 것도 없는데 왜 자기들이 한 것 마냥 행사를 주관하냐며 해병대 주관으로 변경하라고 우긴 적이 있다.[[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716288|예시]] 그렇지만 당시 작전의 한국군 최선임자는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손원일 중장이었으며, 상륙부대의 대다수는 미 육군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머릿 수가 많아 욱여넣을 수 있는 병력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육군은 겨우 1개 연대 수준에 불과했다.] 사실, 상륙전 자체가 해군 수상함 및 해군 항공대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작전이므로 해군도 엄연히 주역이었다. 역으로 해병대야말로 한 것이 전혀 없어 인천상륙작전에 언급도 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타군 출신들이 많은데 애초에 해병대를 필요 이상으로 폄훼하고 깎아내릴 필요조차 없다. 어차피 한국군은 육군이나 해병대나 1개 연대씩만 작전에 참가했으며, 인천상륙전의 성공은 딱히 한국 육군의 공적도 아니다. 대한민국 해병대도 엄연히 미 해병대와 같이 인천에서 작전을 수행했고 통영상륙작전 등에서 충분히 활약했다. 여담으로 해병대에서는 통영과 인천에서의 상륙작전을 '통영상륙전', '인천상륙전'이라고도 부른다. *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에 이 작전을 기리는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이 있다. 1984년에 문을 연 시설이며 작전 당시에 사용됐던 각종 군용 장비는 물론 전투기 등 대형 장비도 전시돼 있다. 인천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학생들 중에는 학교 측의 단체 교육 방침에 의해 이곳에서 반공 내지는 통일안보 교육을 받은 이들도 있다. 이 기념관의 바로 옆에는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이 있다. * 작전지역인 [[인천광역시]]를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단 [[SSG 랜더스]]의 구단명 '랜더스'가 이 작전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인천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담은 이름을 찾다가 인천의 랜드마크이자 하늘과 바다에서 대한민국으로 상륙하는 창구 [[인천국제공항]], [[인천항]]과 함께 인천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으로 유명한 인천 상륙작전이 유명한데 이들 이름에는 '상륙'이라는 공통된 키워드가 있어 야구단의 명칭으로 정해졌다. 랜더스라는 작명 이전에도 전신인 [[SK 와이번스]] 시절부터 작전 감행일인 9월 15일 즈음에 열리는 홈경기를 '인천 상륙작전 메모리얼 데이'로 명명하면서 밀리터리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르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팀 엠블럼은 우주선이라 해당 부분에 비판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